제주에서 가장 먹고 싶은게 뭐냐고 딸에게 물었더니 흑돼지와 회 빼고는 제주랑 상관없이 원래 좋아하던 것을 답했다. 그 중 에서도 가장 먹고 싶은 것은 팬케이크라고 했다.
굳이 제주까지 와서 팬케이크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나, 내가 좋아하는 갈치조림은 그녀에게는 그닥 매력적인 음식이 아니었으니 엄마가 양보해야지. 이왕이면 첫 날에 먹고 싶은 것을 먹는게 좋을거 같아 열심히 검색했고 한림 쪽에 적당한 집을 찾아 곽지해변과 들르는 것으로 코스를 짰다.
1) 시종일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구좌와 애월에는 팬케이크 집이 여러 개 있지만 서남쪽에는 찾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제주까지 와서 먹는데 맛 없는 집은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기에 그간 쌓은 맛집 찾기 내공을 총 동원하여 팬케이크 집을 검색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들어섰을 때 현관을 여는 순간 알았다. 그 곳은 핫플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나름 손품을 열심히 팔아 식당들을 고르고 고른 세월 덕인지 인테리어나 종업원들의 분위기만 보아도 맛집인지 아닌지 느낌이 온다.
시종일관은 특색있는 메뉴, 아름다운 외관과 포토제닉한 아늑한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맛을 모두 갖춘 집이다.
제주에서 먹어 본 브런치 중 가장 맛났다. 서울에도 많지 않은 더치 팬케이크를 어찌나 제대로 풍부한 맛으로 구웠는지 팬케이크 감별사인 딸이 인정했다. 내가 시킨 한우불고기 오픈 샌드위치도 굉장히 실하고 맛있었다. 한우는 야들야들 부드러우며 간이 딱 맞았고 샌드위치는 바삭하면서도 바질소스 덕분에 맛이 풍부했다. 딱 하나 아쉬운건 곁들일 피클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시그니처 옥수수크림 커피는 자꾸 자꾸 먹고 싶은 맛이다. 딱히 옥수수맛이 나는 건 아니지만 뭔가 구수하고 달달한 부드러운 크림이 입에 들어올 때 마다 기분 좋게 만들었다.
아쉬운 점은 너무 잘 되는 집이라 그런지 직원들이 기계적으로 친절한 느낌이 조금 있었다. 뭐 그래도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테이블은 7개 뿐이라 노트북 들고 오래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예쁜 실내와 음식 맛으로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2)곽지 해변
밥 먹고 켄싱턴호텔 방향으로 나가 곽지해변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멋지다. 바다만 휑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어우러져서 드라이브 코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이 될 듯 하다.
곽지해수욕장에 도착해 보니 말로만 듣던 하얀 모래사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바닷물 색깔도 예쁜데 수영 금지 팻말이 붙어있다. 해수욕장인데 왜일까?
좀 걷고 싶어 올레15길이기도 한 해변길을 따라가 보았다. 마음 같아선 올레15길을 두 시간 정도 걷고 싶었지만 딸이 별로 내켜 하질 않아서 맛보기 정도로 20분 정도만 가 보기로 했다.
왜 사람들이 혼자서 올레길 걷기 여행을 오는지 알겠다. 마음가는 대로 걷고 쉬고 선택에 대한 책임도 혼자 감수하면 편할 것 같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동행과 느낌을 나누고 음식도 나누어 먹는 것을 더 즐기기엔 혼자만의 여행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곽지해변 근처는 유명한 관광지 답게 카페도 팬션도 많았다. 이어진 돌담집들, 바다를 바라보며 벽화가 그려진 담장길 풍경이 예쁘다. 특이하게도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었는데 그것도 멋진 기억에 남는 해변 마을이다.
확실히 올레길로 선정된 길들은 뭔가 볼거리가 있는 것 같다.
3) 집의 기록상점
계속 올레15길을 따라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있는 한 눈에도 세련된 건물이 있길래 가보니 유명한 베이커리와 팬션 ‘집의기록상점’이다. 오랜 빵 러버로서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 안 먹어봐도 내공이 보이는 비주얼의 타르트, 까눌레 등이 가득하다. 그리고 딸과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아기자기 소품샵도 귀퉁이에 있다. 마침 치약이 필요했는데 제주에서 만들어진 브랜드의 치약이 있어 사고 양파로 만든 잼도 있길래 신기해서 샀다. 옷과 악세사리들도 보였다. 옷은 날씬한 아가씨들이나 맞을 법한 스몰사이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입어보던 딸은 제주 바다가 떠오르는 이쁜 하늘색 가디건 하나를 찾아 샀다. 나오는 길에 초코 까눌레와 피칸 타르트를 사서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베이커리 바로 앞에 멋들어지게 솟은 키 큰 나무와 나무 테이블 벤치가 있는데 바다를 보며 디저트를 먹으니 제주 감성에 제대로 취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그 깊고도 달콤한 발로나 초컬릿 맛이라니!
이 시골에 이런 퀄리티의 까눌레를 맛 볼 수 있을 줄을 몰랐다. 뒤에 팬션도 운치있어 보인다. 옹포리의 우무 만큼이나 이 곳도 한 감각하는 분들이 제주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중이라 기쁜 마음이 든다.
다시 와 보고 싶은 곳으로 기록하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4) 울트라마린 협재점
딸리 찾아 놓은 노트북 작업 하기 좋은 카페 리스트에 있는 곳이다.
큰 도로 한 켠에 커다란 컨터이너 혹은 창고 모양으로 우뚝 서 있다
규모도 크고 눈 앞에 바다가 펼쳐지는 전망 끝내주는 곳이다.
오션뷰 카페라고 홍보하는 카페 중 들어가면 어딘지 올드하면서 촌스러운 느낌이 나는 곳들도 있는데 여기는 반짝 반짝 눈부신 새 것 같지는 않지만 오래된 품위있는 호텔 로비 같은 느낌을 준다.
내 기준 카페는 트렌디 한 감각이 있거나 올드하지만 품위 있거나 둘 중 하나는 있어야 머무리고 싶어진다.
2층에 무려 14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는데 노트북 작업하기 딱이다
제주도 카페들은 6시에 문 닫는 곳도 많은데 여긴 8시게 다는 것도 좋다.
둘다 두어 시간 정도 열심히 작업 하고 제주에서의 이틀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