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핸드메이드 셀러들의 플리마켓 구경을 좋아하는 우리 모녀는 제주 감성의 핸드메이드 마켓 장이 세화 해변에서 5, 10일 마다 선다는 소식을 듣고 동쪽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하루로는 부족할 것 같아 숙소까지 잡고 일찍 출발하리라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주룩 주룩 오더니만 결국은 취소되었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이왕 이리 된 것 좀 여유있게 경유지도 들러서 가기로 하고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가는 중에 어디를 들르면 좋을까 찾아보았다. 동선 상으로는 북쪽으로 올라가는게 맞는데 딸의 꽈배기 타령에 남쪽으로 빙 둘러 가기로 결정했다. 서귀포 남원읍에 티비 출연에 SNS에서 핫한 백한철꽈배기를 꼭 먹고 싶다고 한다.
이왕 남쪽을 따라 둘러 가는 길에 정방폭포를 보기로 했다. 마침 비도 많이 오고 하니 물줄기가 더 세차겠지 하는 기대로 가지고 출발했다.
1) 정방폭포
10년동안 제주도를 6번 정도 온 거 같은데 정방폭포는 처음이었는데 아기자기한 원앙폭포와는 다르게 웅장한 느낌이었다. 한쪽에는 바다가 보이고 한쪽에는 절벽에서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장관이었다. 이렇게 바다를 끼고 내리치는 폭포가 세계적으로 많지 않을 것 같다. 유명한 관광지들은 역시 다 이유가 있다. 비가 와서 바위가 미끄럽지 않다면 좀 더 폭포 가까이 가서 물줄기를 맞아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입장료를 받길래 폭포 하나 보는데 왜 입장료까지 받나 싶었는데 받을 만한 풍경이었다. 원앙폭포는 비 오는 날에는 그 기막한 에머랄드 빛 도는 물빛을 볼 수 없어 아쉽다면 정방폭포는 오히려 비오는 날 더 볼만한 폭포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2)왈종미술관
앗 폭포 입구 주자창에서 차를 빼는데 왈종미술관이 보인다. 빛의 벙커에서 샤갈보다 감동이었던 왈종 선생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코 앞인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만 원의 입장료는 다소 비싼편이었지만 서귀포의 다양한 풍광을 담은 형형색색 그림들과 모빌같은 조형물들 작가님의 작업실까지 엿볼 수 있는 공간은 매력적이었다. 미술 작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지식이 없기에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런 밝은 에너지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물론 예술은 작가가 느낀 깊은 슬픔과 고통을 통해 독자나 관객으로 공감을 느끼고 그 시간을 견뎌낸 인내를 통해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배우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엔 그림은 긍정적이고 유쾌하고 낭만적인 것들이 좋다. 잔잔하다면 잔잔하고 지루하다면 지루한 일상에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느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옥상에 올라가니 앞으로는 서귀포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런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름난 화가가 된 그 분의 삶이 참으로 부럽다. 좋아하는 일을 아름다운 곳에서 평생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리고 보니 나도 까만 돌담 뒤로 푸른 대나무가 보이는 창을 앞에 두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행복한 삶이 아닌가? 지난 일년 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여행을 이렇게 몰아서 하고 있으니 감사 할 일이다.
3)백한철꽈배기
백한철꽈배기는 2시면 영업을 마치는 집이기에 미술관에서 급히 나와 남원으로 향한다. 딸은 재료소진으로 문을 닫았을까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이런 곳에 가게가 있을까 싶은 좁은 골목에 차들이 즐비하다. 리뷰에 대기가 길 수도 있다고 해서 각오하고 있었는데 줄은 길지 않았다. 우리는 대파꽈배기, 바질토마토치즈 도너스, 크림치즈도너스, 팥도너스를 시켜 차 안에서 모두 해치웠다.
막 튀겨 뜨끈 뜨끈한 꽈배기와 도너스를 한 개씩 맛 보자 이제 까지 내가 먹었던 꽈배기와 도너스가 공장에서 찍어 낸 편의점용 빵 이라면 이것은 호텔 베이커리 유리케이스에 들어 있어야 할 화려한 케이크랄까. 그냥 차원이 다른 맛이다. 꽈배기의 피가 이렇게 야들야들 쫄깃하면서 자꾸만 씹고 싶은 식감이 가능하다니 놀라웠다. 바질토마토치즈 도너스가 모든 맛 중 1등이다. 완벽한 조화다.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상대적으로 팥도너스는 별로였다. 워낙 유명한 팥 빵들이 많아 맛의 기준이 높기도 하거니와 이 집의 팥 자체가 그닥 맛이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어디서도 먹어 본 적 없는 대파꽈배기와 바질 도너스는 체주에 올 때 마다 맛 보고 싶어 질 것 같다.
4)카페 갤러리
남원에서 세화 해변까지 가려니 한 시간이라 산굼부리 근처 카페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30분이상의 거리가 부담스럽다. 삼다수 공장 앞 카페 갤러리로 갔는데 한적한 곳에 화려한 카페가 있다. 잠깐 쉬려는 목적으로 비싼 음료를 마시기 아까워 정원만 산책했는데 웬걸 무슨 비밀의 숲 마냥 신비로운 느낌마저 내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웨딩사진 돌사진 등 특별한 촬영장소로도 이용되고 있었다. 옆에 있는 팬션도 좋아보인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들러 차 한 잔 하면서 정원을 구석 구석 산책해 보고 싶다. 억수로 내리는 비를 뚫고 세화해변에 도착하니 비 때문에 거리가 썰렁하다. 기껏 달려 동쪽 해변까지 왔것만 제주 온 이후 가장 많이 비가 온 날이다.
5) 카페 달책방
구좌에 왔으니 당근케이크 먹어 줘야지 싶어 당근케이크가 유명한 카페로 향한다. 달책빵이라는 이름도 예쁜 세화리의 카페 답게 제주 감성이 가득하다. 독립서점도 함께 있어 책을 보거나 노트북 작업하기도 좋다. 창문마다 풍경도 다르다. 어떤 자리에서는 대나무 숲이 보이고 어떤 자리에서는 아늑한 마당이 보인다. 화장실 까지 구석 구석 아기자기한 취향이 담겨있다.
그런데 음식 맛에서는 큰 점수를 주지 못하겠다. 커피는 구수하지만 밍밍했고 당근케이크는 파운드 케이크 마냥 너무 딱딱해서 실망했다.
그리고 5시 30분에 문을 닫는 것도 좀 아쉬웠다. 근처의 제주바이브라는 이름의 기념품 가게도 들러볼겸 동네 산책을 한다. 돌담길에 둘러쌓인 아늑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늑한 마을이다. 여기도 역시 올레길 표시가 있다.
5)대수굴식당
억수 같은 비가 내렸던 터라 그런지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이 고양이 들만 잔뜩 어슬렁 거리는 거리가 을씨년스러월질 무렵 카페앞에서 봐 두었던 밥 집으로 향한다. 한 눈에도 맛집의 포스가 보인다. 고등어랑 미역국을 시켰더니 푸짐한 한 상을 차려주신다. 와 황금빛 고등어 때깔과 성게가 가득 들어간 미역국을 보니 먹지 않아도 이건 무조건 맛있다
역시나 미역국 한 술 뜨는데 퍼붓는 빗속을 뚫고 3시간 넘게 운전한 피로가 풀릴 정도의 맛이다. 그냥 소울 푸드다. 고등어의 탱탱한 고소한 맛도 잊을 수 없다. 콩나물, 호박, 김치 밑반찬도 다 맛있다. 남자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시는거 같은데 어찌 이렇게 맛깔스럽게 하시는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6) 팬션 돌담너머집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고 숙소로 향한다. 멀지는 않았지만 바다도 카페도 유흥시설도 없는 완전 촌동네 한 복판의 좁은 골목길을 구비 구비 들어가야 나오는 팬션이다.
10만원 초반대의 제주감성을 주제로 급하게 찾은 집이라 큰 기대는 안했는데 딱 기대만큼이다. 2030타겟으로 감성적 인테리어가 돋보였지만 집도 워낙 좁은데다 창문을 열기엔 너무 길가에 인접해 블라인드를 계속 내리고 있어야 해 답답했다.
화장실 변기나 어매니티의 질, 그릇이나 사소한 집기의 퀄리티 등 3년 전 묵었던 애월의 드렌도트에 비하면 디테일이 한참 부족하다. 그러나 뭐 숙박비가 딱 그곳의 절반이니 감수해야지 어쩌겠나.
그래도 넷플릭스가 나온다. 원래 숙소엔 티비 자체가 없던지라 간만에 반가운 마음으로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드라마 돌풍이 인기라길래 시작했는데 역시 재밌었다. 5편 몰아보기하고 하루 일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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